산 -- 고은
산기슭에 태어나서 나도 산이었다 산과 사람이 하나인 시절 어린아이 깔깔대며 나도 산이었다
젊은 날 산에 들어가 내 마음 가득히 산 소나기에 젖어 겨울이 오면 겨우살이 싱싱하여라 나도 산이었다
신새벽 어두움속이어도 날 저물어 온통 산이 어둠속에이어도 나에게는 그리운 것이 다 보였다 아주 환히 먼 데까지
그러다가 산을 떠나서 파도소리 어느 바다였던가 여기저기 뛰돌다가 불현듯 고개들어 바라보면 거기가 산이었다
산이 말한다 그 푸른 눈매 지워 오고 싶거든 어서 오라 태어난 산이거든 그것이 돌아갈 산이므로 다시 나는 산이었다.
언제나 변함없는 그자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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